
올해 『 김K 정전 』으로 제14회 수림문학상을 수상한 정지상 작가.
물리학을 전공하고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해 온 정지상 작가는 첫 소설 『맹인의 거울 』을 시작으로 『반성문 』 , 『가난 치료사 』등을 발표하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지금도 개발과 출판, 집필을 병행한다.
아차산이 보이는 공간에서 만난 정지상 작가는 나긋나긋한 말투와는 다른 매서운 눈빛에서 다층적인 면이 엿보이는 사람이었다. 동시에 물리학적 사고와 문학적 상상력이 공존하는 묘한 느낌의 작가와 진지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물리학을 전공한 소설가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궁금했다.
“물리학을 공부하면서 보존과 대칭이라는 개념을 배우는데요. 대칭은 특정한 변환에 대해 달라지지 않는 성질이고, 보존은 변화하는 과정에서도 일정하게 유지되는 물리량에 관한 것이에요. 저는 이 개념들을 배우면서 조건을 바꾸어 볼 때 무엇이 달라지고 무엇이 그대로 남는지를 생각하는 습관을 익혔어요. 미시적인 세계와 거시적인 세계를 구분하고, 규모와 층위에 따라 현상을 살펴보는 훈련도 학부 시절 내내 했습니다. 이를테면 종이컵을 본다면 먼저 관찰 대상과 관찰자, 그리고 둘 사이의 관계를 정의해야 해요. 그다음에는 관찰 대상을 규모별로 층위를 달리하면서 보는 거예요. 일상적인 영역에서 종이컵 안에 담긴 물을 볼 수 있고 혹은 물 분자의 입장에서 저를 바라보는 걸 상상해 볼 수 있어요. 더 나아가면 물 표면에서 천장을 올려다보면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해 볼 수 있고, 종이컵을 이루는 원자의 자리에서 물을 내려다보는 시점도 상상할 수 있겠죠. 저는 이걸 ‘돌려보기’라고 부르는데요. 이렇게 규모를 바꾸고 시점을 돌려 보면서 무엇이 달라지고 어떤 관계가 여전히 남는지를 살펴보는 거죠. 그 과정에서 한 대상을 조금은 덜 오해하고, 더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게 제가 세상을 보는 방법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지극히 물리학도다운 접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의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사회 시스템을 보는 관점도 궁금해졌다.
“사실 글을 쓰기 시작한 초창기에는 거의 모든 게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당시에는 미디어 회사나 대형 소셜 플랫폼 기업들이 이용자들에게 특정한 ‘정상성’의 기준을 주입한다고 봤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일상을 캡처하고 박제해 견제하고, 타인의 삶을 자신과 끊임없이 견주면서 스스로를 검열하게 된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문화가 회사 생활이나 사적인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불만이었어요. 여전히 조금은 불만입니다.”
작가는 소셜 네트워킹 사회가 가진 문제에 대해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현상이 생기면 기업이 수요에 대응하고, 다시 기업이 만들어 놓은 환경에서 그 현상이 강화된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기업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사정도,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의 양면성도 직접 겪고 나니까 누가 잘못했는지를 분명하게 말하기 어려워지는 거예요. 그렇다고 양비론에 머물고 싶지는 않습니다. 결정하는 사람, 집행하는 사람, 책임지는 사람, 수습하는 사람, 비용을 부담하는 사람이 모두 다를 수 있어요. 시점도 다르고, 책임마다 경중도 다르겠죠. 그렇게 나눠 보면 오히려 누가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 쉽게 단정하기가 어려워져요. 아니, 사실 조심스럽다기보다 모르겠어요.”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수상작『 김K 정전』으로 이어졌다. 작품은 정정을 요구하던 김K가 사라진 뒤, 동료 박M이 그가 남긴 기록과 증언을 통해 행적을 재구성하는 이야기다. 작가는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누가 감당해야 하는지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이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정말 가장 어려운 질문인데요. 여전히 찾고 있는 질문이기도 해요. 사실 『김K 정전』을 완성할 무렵에는 어느 한 주체가 모든 비용을 감당해야 한다는 판단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일을 결정한 사람과 집행한 사람, 실제로 민원에 응대한 사람이 서로 다를 수 있잖아요. 다만 그 비용을 여러 주체가 어떤 식으로든 분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구체적인 부담의 기준과 방법에 대해서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어요.”
사실 그 답을 알기란 어쩌면 인생 문제처럼 철학적인 난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인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질문을 던졌다. 그는 이 질문에 금방 대답하지 않았다. 시간이 필요하다는 작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저는 인생이란 어쨌든 선택하고 책임지기로 하는 일의 연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안다고 말하려면 제가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와 다른 사람이 이해하는 의미가 같은지부터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서로의 인식이 완전히 일치하는지 확인하는 일부터가 쉽지 않죠. 사실 저 자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무엇을 느끼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조차 언제나 정확하게 알 수는 없거든요. 이렇게 따지다 보면 결국 아무것도 완전히 알 수 없다는 편한 결론으로 가기 쉬워요. 어쩌면 이 흐릿함 사이를 비집고, 잘 모르고 두렵지만 그래도 어쨌든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지고 비용을 치르는 과정의 연속이 인생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가 말하는 형이상학적인 표현들은 작가의 사고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말한 ‘흐릿함 사이를 비집고’란 표현이 알 수 없는 인생을 표현하기에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김K 정전>으로 돌아왔다. 작품에서 김K를 직접 등장시키지 않고 이메일과 주변 사람들의 기록으로 재구성한 이유가 궁금했다.
“저는 저 자신을 100%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는 뜻은 아니에요. 제 장단점이나 성향은 알지만, 실제의 저와 제가 이해하는 저 사이에는 반드시 오차가 존재한다는 거죠. 다른 사람이나 대상을 100% 이해하는 것도 불가능해요. 그래서 김K가 남긴 기록과 주변 사람들의 증언을 통해 인물을 드러내고 싶었어요. 김K를 등장시키지 않은 건, 독자가 끝까지 그를 오해할 수밖에 없도록 한 장치이기도 해요. 역설적이지만 동시에 가장 덜 오해받는 방식이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누군가 한 사람의 설명으로 그를 규정하는 대신 서로 다른 기록을 통해 복잡한 면모를 살펴볼 수 있으니까요. 특히 일상까지도 전자적 기록으로 남는 시대에는 인물의 외견이나 몸짓뿐 아니라 세금계산서, 계약서, 메신저 대화, 이메일, 청구서, 영수증 등도 그 사람을 이해하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어떤 선택을 했고, 무엇을 요구했으며, 어떤 비용을 치렀는지가 기록으로 남으니까요. 그래서 실제로 첫 책 『맹인의 거울』이나 『가난 치료사』에서도 내지 조판을 활용해서 전자적 기록들을 오브제처럼 가져와서 넣기도 했어요.”
그에게 인물의 복잡성을 보여주는 일은 어느 한쪽의 시선을 정답으로 제시하는 일이 아니다. 여러 기록과 관점을 통해 인물의 모습을 드러내되, 그 해석이 언제든 불완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남겨두는 일이다.
작가에게 소설 쓰기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건지, 아니면 견디기 위한 건지 물었다.
“견디고 싶어서 이해하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요. 대학생 때부터 일을 했어요. 코로나19 유행 당시에는 진동 신호 분석 설비의 기술지원 업무를 하며 학업을 병행했죠. 졸업 직후인 2022년 5월에 국내의 한 대형 자동차 부품 회사에 입사했어요. 첫 직장이었던 독일 회사와는 일하는 방식과 조직 문화가 달라 적응해 가는 시기였어요. 그전부터 누적된 피로가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건강 문제와 입사 직후 겪은 개인적인 상실까지 겹치면서 못 견디게 되더라고요. 그때 네이버 도전 웹소설에 글을 올렸는데 순위가 1, 2위에 오르기도 했죠. 하루라도 젊을 때 이걸 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다 싶었죠. 그렇게 처음엔 버티려고 쓴 글이, 쓰다 보니 저와 주변 사람들을 이해하려는 쪽으로 가 있더라고요.”
이제 작가의 글쓰기가 궁금해졌다. 소설의 소재를 사회적인 뉴스에서 얻는지, 일상에서 얻는지 물었다. 개발과 출판, 집필을 병행해 온 그에게 언젠가 일을 내려놓고 글쓰기에만 전념할 생각은 없는지도 물었다.
“소설의 소재 대부분은 제 삶에서 나옵니다. 특히 일하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면모가 절대적이에요. 그 사람은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그때 저는 무엇을 놓쳤을까 생각하다 보면 그게 소설의 소재가 되기도 해요. 그런 점에서 저에게 소설 창작과 프로그램 개발은 출발점이 거의 같아요. 어떤 상황에서 문제가 생겼는지 살펴보고, 그 문제에 관여한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하죠. 다만 도착하는 곳은 조금 달라요. 창작은 사람들을 이해하는 과정이면서 동시에 저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지만, 개발할 때의 저는 그렇게 이해한 문제를 실제로 해결하는 사람이에요. 제가 일하면서 마주하는 문제들을 실제로 작동하는 프로그램이나 절차로 고쳐 볼 수 있으니까요. 소설이 질문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 일이라면, 개발은 그 질문에 지금 할 수 있는 답을 하나 내놓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일의 규모와 범위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은 늘 꿈꾸고 있고,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일을 놓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떤 것도 삶보다 앞설 수는 없으니까요.”
마지막으로 작가에게 궁극적으로 쓰고 싶은 소설에 대해 물었다.
“자신과 세계를 용서할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독자는 읽는 과정에서, 저 역시 쓰는 과정에서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과 세계를 용서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괜찮다고 말하거나 잘못을 없던 일로 만드는 것과는 다를 것이다. 그가 이야기해온 책임과 비용, 불완전한 이해의 문제를 떠올리면 오히려 복잡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은 채 그 안에서 살아갈 방법을 찾는 일에 가깝다.
정지상 작가는 세계를 단순하게 규정하지 않는다. 한 사람의 행동에는 여러 관계가 얽혀 있고, 하나의 사건에는 서로 다른 책임과 비용이 연결돼 있다. 기록은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지만 그를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자기 자신조차 완벽하게 알 수 없는 삶에서 판단은 언제나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져야 한다. 작가가 소설 속에 남겨두는 질문은 명쾌한 정답보다 그 과정을 끝까지 들여다보려는 태도에 가깝다. 물리학에서 배운 관찰의 방법으로 인간과 사회를 여러 층위에서 살피고, 소설이라는 형식으로 그 복잡성을 다시 구성하는 것.
정지상 작가가 쓰고 싶은 이야기는 어쩌면 그 불완전한 세계를 이해하려는 시도이자, 그 안에서 자신과 타인을 조금 더 깊이 받아들이기 위한 과정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