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신 출판평론가의 독서 큐레이션] 만유인력이 물고기 도감에 밀릴 뻔한 사연

『문과의 눈으로 보면 과학 고전이 더 재밌어진다』 , 박균호 지음 지상의책(갈매나무) 

뉴턴의 『프린키피아』는 하마터면 인쇄되지 못할 뻔했다. 영국 왕립학회가 직전에 『물고기의 역사』라는 도감을 내느라 출판 예산을 거의 다 써 버렸기 때문이다. 결국 천문학자 에드먼드 핼리가 자기 돈으로 인쇄비를 댔다. 인류의 사고를 바꾼 책이 한 사람의 사재와 고집 덕분에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왕립학회는 핼리에게 줄 보수마저 팔리지 않고 남아 있던 물고기 책으로 치렀다. 저자는 이 일화를 이렇게 정리한다. 만유인력이 물고기 도감에 밀릴 뻔했다고.

박균호의 문장은 사랑스럽다. 사람을 자주 미소 짓게 만드는 매력적인 문체다. 그는 30년 동안 중·고등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쳐 온 교사이자, 줄기차게 책을 펴내는 저술가다. 벌써 십수 년 전의 일이다. 그의 문장에 반해 연락처를 수소문해 만났고, 얼마 후 나는 그에게 잡지 연재를 권했다. 그 유머러스한 문체에 최적화된 독특한 서평 기획이었다. 그 연재를 모아 만든 책이 바로 2017년에 나온 『독서만담』이다. 그 제목도 내가 지었다. 장서가의 죽음이 헌책 수집가에게는 최고의 대박 기회라고 천연덕스럽게 적던 사람이다. 정반대의 감정을 태연하게 이어 붙이고, 과장은 크게 하되 표정은 끝까지 진지하다. 그 웃음의 밑바닥에는 늘 자기를 낮추는 태도가 깔려 있어서 읽는 사람이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 이번 책에서도 그는 자신이 구구단을 못 외워 나머지 공부를 하던 아이였다고 먼저 털어놓는다.

그의 유머가 이번에는 과학 고전을 향했다. 저자는 과학 지문 앞에서 막히던 학생들을 오래 지켜보았고, 아이들이 막히는 이유는 낱말보다 장면이 떠오르지 않는 데 있다고 진단한다. 그래서 공식을 먼저 내밀지 않고, 과학자가 어떤 질문을 풀려다 그 생각에 이르렀는지부터 들려준다. 가장 빛나는 장면은 화학책에 괴테의 연애소설이 등장하는 대목이다. 노벨 화학상 수상자 로얼드 호프만의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에는 괴테의 『선택적 친화력』이 나온다. 소설 초반, 대위가 귀족 부부 에두아르트와 샤를로테에게 화학의 ‘친화력’을 설명한다. AB와 CD가 만나면 짝을 바꾸어 AD와 CB가 된다는 것이다. 얼마 뒤 에두아르트는 샤를로테의 조카 오틸리에에게 끌리고, 샤를로테는 대위에게 마음이 기운다. 괴테는 화학 반응을 설명하는 대화를 뒤이어 벌어질 네 사람의 관계와 겹쳐 놓았다. 반응식이 그대로 네 사람의 연애 예고편이었던 셈이다. 이 대목을 읽고 나면 화학과 문학을 가르던 칸막이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1543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부터 2003년 『해러웨이 선언문』까지 27편은 각각 독립되어 있다. 각 편 끝에는 생각할 거리 두 가지와 이어 읽을 책 세 권이 붙어 있다. 이런 구성은 통합과학으로 시험을 치러야 하는 수험생에게도 당장 요긴하겠다. 하지만 저자가 이끄는 대로 낄낄대며 읽다 보면 어느새 원전을 구입하러 다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과학 덕후 배양 플라스크 같은 책이랄까. (글, 사진 / 김성신 출판평론가)

김성신 출판 평론가 / 서평가를 발굴하는 서평가. 2000년부터 출판평론가로 글을 쓰고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서평 프로그램 『TV책방 북소리』(TBS)를 4년간 진행했고, 2003년부터 2024년까지 21년 6개월 동안 『라디오 매거진 위크앤드』(KBS1R)에 출연했다. 『조선일보』 「재밌다, 이 책!」 코너에 7년 동안 서평을 연재하는 등 여러 분야에서 대한민국 출판계 대표 ‘마이크’로 활동 중이다. 25년 넘게 서평은 물론 방송과 강연까지 넘나들며 새로운 독서 문화를 만들고 후배·제자 서평가를 꾸준히 발굴했다. 2019년에는 ‘비평연대’를 창립하고 20대 젊은 출판인과 문화예술인 20여 명을 서평가 및 문화비평가로 양성하며 이들이 긴밀하게 소통하도록 네트워크를 만들었다. 그 덕에 현재 국내 서평가의 8할은 서로를 지지하고 격려하는 친밀한 관계다. 한양대학교 창의융합교육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Copyright ⓒ 에디토리얼 타임즈. All rights reserved. 기사의 무단 전재나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에디토리얼 타임즈 편집부

contact@editorialtimes.co.kr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