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25년 장편소설 <잠든 나의 얼굴을>로 제 2회 아르떼 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임수지 작가.
임수지 작가를 처음 만난 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주최한 ‘신진작가 북토크’였다.
북한산 아래 더숲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진행한 북토크에서 본 작가는 활발하고 건강한 이미지의 젊은 작가였다.
그의 아르떼 문학상 수상은 총 503편의 응모작 중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선정되었을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잠든 나의 얼굴을>은 ‘돌봄’을 소재로 한 장편 소설로 단단한 완성도와 흡입력을 보여주었다는 평가를 얻었으며, 극적인 사건보다는 일상의 잔잔한 흐름과 인물 간의 관계에 집중한 작품이다.
태어나 처음 쓴 장편소설로 문학상을 거머쥔 임수지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장편소설을 쓸 수 있으리라 생각조차 못했었다는 그에게 당선 이후에 어떻게 바뀌었는지 물었다.
“저는 이제 장편소설을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사실 ‘쓸 수 있어’와 ‘쓸 수 없어’가 매 순간 반복되고 있지만, 그래도 다시금 쓸 수 있다고 스스로를 다독이곤 합니다. 기합이나 응원에 가까운 ‘쓸 수 있어’입니다. 장편소설은 꼭 넓은 운동장 같아서 혼자 멈춰서서 여기서 뭘 해야 하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래도 여기서 저기로 뛰어보기도 하고 걸어보기도 하며 조금씩 써나가게 되는 것 같아요. 괴롭거나 외롭다고 느낄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 운동장에 있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아직은 글 쓰는 힘든 시간마저 즐기는 것처럼 들렸다.
<잠든 나의 얼굴을>은 할머니를 돌보기 위해 10년 만에 광주 고향집으로 돌아온 나진의 이야기이다. ‘돌봄’이라는 소재를 장편의 중심에 놓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몇 년 전, 집에 혼자 계시기 어려운 할머니와 함께 있기 위해서 며칠 시간을 보낸 적 있었습니다. 그땐 할머니를 돌본다는 생각은 하지 못하고 할머니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했습니다. 소설은 그 경험에서 자연스럽게 시작되었어요. 소설을 쓰고 난 후로 제게 ‘돌봄’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더 확장된 것 같아요. ‘손녀가 할머니를 돌본다’는 문장 안에 서로 주고받은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요? 언젠가는 할머니가 손녀를 돌봤을 것이고, 또 그 사이에 무수한 사람들이 서로를 짧고 혹은 길게 돌봤을 테지요. 서로에게 관심을 가지고 보살피는 일은 오늘도 내일도 수시로 계속될 것이라는 생각이에요. 누군가 아무리 독자적으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돌봄에서 완전히 분리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작가의 글은 자극적이고 빠른 전개가 대세인 요즘 콘텐츠 흐름과는 정반대로, 잔잔하고 절제되어 있다. 이런 스타일이 자연스럽게 나온 건지 의식적인 선택이었는지 질문했다.
“문체는 걸음걸이처럼 각자의 고유한 움직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발의 위치를 의식해서 걷듯 문체를 다르게 바꿀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는 자연스럽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오래 걷기에는 힘이 부치겠지요. ‘잠든 나의 얼굴을’의 문체는 아마 저의 고유한 걸음걸이이지 않을까 합니다.”
작가는 ‘멀찍이 있어도 연결되는 느슨한 관계’를 그리고 싶었다고 밝히신 적이 있는데 그런 관계의 형태에 특별히 마음이 가는 이유가 있는지 궁금했다.
“저는 완전히 혼자인 누군가를 상상하기가 어려워요. 아마 제가 여러 보살핌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일 거예요. 가족뿐 아니라 친구와 동료를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우리가 매일 얼굴을 마주하지 않지만, 서로의 목소리를 매일 듣지 않지만, 늘 곁에 있다고 느끼거든요. 그 생각이 살아가는 데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몰라요. 든든해요.”
작가에게 관계란 물리적 거리와는 상관없이 서로를 향한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부모의 이혼, 조부모와의 동거, 가족 안에서의 돌봄 노동처럼 오늘날 2030 독자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겪고 있을 법한 소재들을 다룬 그의 소설이 지금 이 세대 독자들에게 어떤 식으로 가 닿길 바라는지 물었다.
“<잠든 나의 얼굴을>이 무엇에 대한 이야기로 정리되기보다는 내 기억을 꺼내볼 수 있는 소설로 남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내게는 이런 일이 있었지.’, ‘갑자기 왜 이런 생각이 들지?’ 저는 책을 읽으며 수시로 다른 생각에 빠지곤 하는데, 그 시간이 참 좋아요. 책 귀퉁이나 공책에 끄적끄적 메모도 하고요. 읽으면서 각자의 기억을 소설의 문장에 덧대어볼 수 있다면 쓰는 사람으로서 감격스러울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첫 장편을 세상에 내놓으신 지금, 다음으로 써보고 싶은 이야기나 인물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지 질문했다.
“‘나는 왜 이럴까?’를 고민하는 인물들을 오래도록 쓰지 않을까, 지금으로선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쩐지 세상에서 자꾸만 미끄러지는 것만 같고, 혼자만 모난 것 같다고 느끼는 인물들이요. 울고, 웃고, 주눅들고, 쓸데없는 생각을 오래 하고, 가끔은 명쾌해지기도 하는, 그런 인물들을 그리고 싶습니다.”
그가 그릴 인물들이 세상 속에서 울고 웃으며 또 다시 살아내는 시간이 빨리 오기를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