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①편에서 이어집니다.
작가이자 변호사, 평론가인 정지우 작가는 SNS 문화와 현대인의 불안을 분석하여 청년층 사이에서 폭발적인 공감을 얻은 사회비평 에세이<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와 <분노사회>, <청춘 인문학>, <불행에 몰두하지 않는다>등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으며, 지난달 환상으로 가득한 시대에 현실의 나를 지키는 방법을 제안하는 신간 <환상사회>를 출간하였다.
이하는 정지우 작가와 나눈 일문 일답.
이제 글쓰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AI가 글을 쓰는 시대에 ‘좋은 글’의 기준도 달라질까요?
“이제 단순히 문장이 아름답다든지, 논리력이 뛰어나다든지 하는 가치 평가는 줄어들 것 같아요. 옛날엔 우리가 칼럼을 읽더라도 논리 전개가 치밀하면 감탄을 했지만, 지금은 AI가 쓴 거 아냐 하며 의심부터 하거든요. 제가 대학생 때 좋은 글을 쓰려면 나라는 말을 쓰지 마라는 말을 들었거든요. 왜냐하면 나라는 말이 주관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최대한 객관적인 태도 안에서 글을 써라 했어요. 하지만 앞으로의 시대는 완전 정반대가 될 거라고 생각을 해요. 칼럼 한 편을 쓰더라도 자기의 진실을 걸고 경험에서 출발해 삶에서 녹아 나온 글이라는 점을 내세우지 않는다면, 뻔하고 흔한 글이 돼버릴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사회 문제를 다루고 논리적인 문제를 다루더라도, 자기 인생 경험과 삶에서 느낀 것을 이야기해야 사람들이 읽을 가치가 있다고 여길 것 같습니다. 물론 이제 그것조차 AI가 다듬어 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나쁘다는 것도 아니고요. 한국의 인구 문제에 대한 글을 읽는다 그러면 웬만한 건 AI한테 물어보면 더 자세히 알 수 있어요. 전 세계 논문을 검색시키고 한국의 인구 구조 문제에 대해서 지역 수도권 집중을 통해서 검토해 줘, 부의 양극화를 검토해 줘, 이런 걸 AI랑 대화하면 훨씬 치밀하게 할 수 있거든요. 근데 AI한테 물어보는 게 아니라 굳이 다른 사람의 글을 읽어야 한다면, 지방에서 살다가 서울로 이전한 경험이라든지, 30대 여성으로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어떤 불합리라든지, 이런 경험이 묻어나와야만 읽을 가치가 생길 거라는 거죠. 좋은 글의 기준이라는 것도 결국에는 그 사람을 얼마나 느낄 수 있느냐, 저자가 자기의 경험과 삶으로부터 나온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가가 더 중요한 시대가 될 거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작가님은 저자의 존재가 앞으로도 중요하다고 보시나요?
“저자가 훨씬 중요해지죠. 오히려 글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거죠. 잘 쓴 글이냐 완성도가 있냐는 부차적인 문제가 되고, 누가 썼느냐 신뢰할 만한 사람이냐가 중요해질 거라고 봐요. 만약에 아이도 안 키우는 사람이 육아 에세이를 썼다면 사실 터무니없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실제로 어떤 육아를 하고 있고,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어떤 신뢰성을 종합적으로 확보하고 있는 사람인가가 저는 훨씬 중요해진다고 생각해요. 사실 우리가 알고 있는 ‘저자성’의 개념은 나온 지 얼마 안 됐잖아요. 18~19세기가 되어서야 책을 대중적으로 읽기 시작했기 때문에 인류 역사에서 보면 얼마 안된 저자의 개념이고, 또 불투명성에 기반하고 있거든요. 디킨스의 소설 같은 건 배에서 원고를 실어와 항구에서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받아서 읽었으니 그 시대 저자의 존재는 베일에 쌓여 있어도 상관없었어요. 그러니까 작품만 좋으면 그만이었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신문에 실린 글이면 존중 받았고, 매체의 힘이 텍스트를 신비화하고, 추종했던 시대가 있었죠. 하지만 앞으로 시대는 저자가 굉장히 투명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옛날에는 성추행을 하며 개차반으로 살아도 문학만 아름다우면 추종하는 시대였지만, 지금은 저자가 자기 삶을 투명하게 보여주지 않는 상태에서 좋은 글이란 점점 무의미해진다는 거죠. 그러니까 SNS를 통해서든 독자 입장에서는 글과 저자가 일치한다고 믿을 수 있을 때만 좋아할 수 있게 되고, 글만 가지고 승부 보던 시대는 사라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책이라는 매체도 우리가 저자에 대한 불투명성 속에서 책만 좋아서 보는 일은 드물어질 것이고, 결국에는 저자의 투명성을 전제로 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AI 시대에 오히려 고전이 중요하다는 분위기가 있는데 작가님이 생각하시기에 고전을 읽어야 되는 이유가 뭘까요?
“저는 AI 시대의 고전은 일종의 AI 청정 구역 같아요. 왜냐하면 지금 나오는 책들은 책을 읽으면서도 AI가 쓴 거 아니야, 논문 레퍼런스 AI가 달아준 거 아니야, 이런 의심을 하게 되잖아요. 근데 고전은 그런 의심 없이 편안하게 몰입할 수가 있죠. 저는 책을 읽을 때 내용도 중요하지만 책을 읽는 수용자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같은 문장이어도 고전의 문장이라고 하면 벌써 문장에 대해서 다가오는 게 다르잖아요. 근데 AI가 써준 문장이라고 하면 수용자의 태도가 달라지죠. 그래서 수용자의 태도가 오히려 고전을 더 가치 있게 만든다고 느껴요. 왜냐하면 고전의 좋은 문장들, 채근담이나 명상록에 있는 문장들은 AI도 만들 수 있거든요. 근데 AI가 만들어낸 문장들은 소모적이고 소비적이라면, 고전은 세월을 견딘 문장들이기 때문에 고전을 펼치는 순간 그 안에서 많은 걸 끌어내게 되는 거죠. 이게 다 마찬가지인 게 같은 말도 내가 존경하는 목사님이나 스님이 하신 말씀인 거와 내가 미워하는 상사가 한 말이면 전혀 다르게 들리잖아요. 그런 것처럼 저는 고전이 우리 시대에 각광받는 것은 AI 슬럽도 많고 콘텐츠 범람의 시대에 우리의 태도를 바꿔준다고 봐요. 그래서 우리를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깊은 걸 길러낼 수 있는 태도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고전이 중요하다고 느껴요.”
이제 좀 가벼운 질문을 드려보겠습니다. 글을 쓰기 싫을 때는 어떻게 하시는지요?
“보통 쓰기 싫은 글이라고 한다면 마감이 다가오거나 잘 써야 되는 글들은 쓰기 싫을 때가 조금씩 있죠. 근데 저는 그것조차 글쓰기로 생각을 적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오늘은 글 쓰기 싫은 날이다. 오늘은 왜 이렇게 글을 쓰기 싫을까 뭐 이런 식으로 일기라도 쓰는 거죠. 그러니까 생각을 글로 하는 거죠. 내가 좋은 글을 써야 되는데 쓰기 싫은 마음조차 저는 일기라도 남기는 것이 생각 정리가 되는 편이어서 그런 식으로 합니다. 사실 매일 쓰는 것 같아요.”
작가, 변호사, 평론가 등 여러 역할을 동시에 살아가고 있으신데, 가장 나답다고 느껴지는 역할은 무엇인가요?
“제가 15살 때부터 25년째 글을 쓰고 있는데 글을 쓰면서 사회적인 정체성이 굉장히 많이 바뀌었어요. 학생일 때도 있었고, 백수일 때도 있었고, 직장일 때도 있었고, 법원에 넥타이 매고 가는 변호사일 때도 있었지만, 사실 외적인 정체성보다는 제가 25년 동안 늘 글을 써왔다는 것이 저의 뿌리 같은 정체성이라고 많이 느낍니다. 그래서 제가 또 20년 어떻게 살지 모르지만, 어떤 직업을 가지고 어떤 직장을 다니고 어떤 형태로 살지 모르겠지만 앞으로 글은 계속 쓰지 않을까 싶네요. 그러면 글 쓰는 사람의 정체성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가이면서 저작권 분야 변호사를 하시게 된 계기가 있는지요?
” 당시 제가 언론사 취업을 준비하던 중이었는데, 로스쿨 변호사도 글 쓰는 직업에 가깝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로스쿨 시험도 쳤어요. 근데 언론사 시험은 안 되고 변호사 시험이 두 번째 붙어서 로스쿨을 갔던 거죠. 그때 아내랑 결혼도 했기 때문에 안정적인 상황이 필요한 때였기도 하고요. 그래서 30대 시작했던 새로운 진로였고, 그 과정에서 배운 게 많았어요. 제가 인문학이나 문학에만 관심이 있다가 법을 통해서 사회를 보고 세상을 보게 되니까 더 입체적으로 보이는 게 많더라고요. 그래서 삶이라는 게 처음에 계획했던 바가 아니더라도 이것저것 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게 많다는 걸 느끼기도 했죠. 그리고 아무래도 글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책을 쓰는 과정에서 다른 책 인용 문제라든지 저작권 관련된 문제들이 굉장히 많았기 때문에 그런 문제들이 궁금했었거든요. 그래서 변호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저작권 분야에 제일 관심이 가더라고요. 그렇게 저작권 공부도 하고, 책도 쓰고 해서 출판계나 창작이나 콘텐츠 관련돼서 많이 활동하기 때문에 저작권이랑 많이 자연스럽죠. 지금은 저작권 사건이 생겼을 때 법원에서 표절이 맞는지 감정을 맡겨요. 제가 감정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건은 계속하고 있는데 말하자면 저는 판단하는 판결 쪽에 가까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사단법인 ‘오늘은’ 활동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사단법인 ‘오늘은’은 대학 내일이라는 회사에서 만든 비영리 재단이어서 대학 내일에서 기부를 하고 사회봉사를 하는 비영리 재단이에요. 원래 다른 이사장님들이 맡아 오시다가 작년 여름에 저한테 이사장을 맡아 달라는 연락을 받았죠. 청년들을 돕는 그런 단체라서 문화 예술과 관련된 청년들의 활동을 돕기도 하고, 문화 예술을 통해서 청년들 자체를 돕기도 하는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기존에 사단 법인에서 해오던 고립 청년들 함께 캠프를 간다든지, 심리 치유 프로그램을 한다든지, 이런 활동들을 많이 하고 있어요. 제가 이사장이 되면서 새롭게 할 수 있는 프로젝트들을 많이 제안하고 있죠. 저희 사무국장님이나 직원분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교류하면서 청년들을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하고 있죠. 제가 추진한 프로젝트들은 최근에 로컬 문제에 관심을 가지자고 해서 로컬에 있는 작가님을 소개해 드리고, 로컬 청년들을 만나서 같이 글을 쓰는 이런 프로젝트를 제안하거나 아니면 최근에는 청년 작가들을 모아서 우리 시대에 청년 담론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단체가 되려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정지우 작가와의 긴 대화 속에서 작가의 세상을 보는 반듯한 시선과 사람을 향한 따듯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의 가을 햇살이 유난히 찬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