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구나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는 시대다.
이미 글쓰기는 자기표현의 수단을 넘어 자기계발의 영역으로 확장됐다.
북토크에 참여하고, 글쓰기 모임에서 문장을 나누며, 한 권의 책을 출간하는 일을 목표로 삼는 사람도 많아졌다.
25만 부를 넘긴 <태도에 관하여>를 비롯해 <자유로울 것>, 소설 <다 하지 못한 말>,<가만히 부르는 이름> 등등 20년 넘게 글을 써온 임경선 작가는 글쓰기를 향한 이런 열기에 마냥 긍정적이지 않다.
그런 작가가 올해 1월 처음으로 글쓰기 자체를 정면으로 다룬 에세이<글을 쓰면서 생각한 것들>을 출간했다.
흰색 셔츠가 잘 어울리던 시크한 분위기의 임경선 작가와 광화문 근처에서 만나 글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먼저 20여 년의 시간을 지나 글쓰기에 관한 책을 출간한 이유를 물었다.
“사실 글쓰기에 관련된 글은 거의 커리어의 마지막에 써야 된다고 생각했던 거고요. 그리고 요즘 북토크나 이런데 가면 다들 쓰는 분위기니까 나도 뭔가 써야 하는 숙제처럼 바라본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원고를 보면 AI도움 받아서 쓴 것도 정말 많고, 정말로 글을 쓰고 싶어서 글을 쓰나 하는 의문이 있어요. 그래서 이건 아니지 않냐는 좀 쓴소리랄지 듣기 싫은 이야기를 쓴 거죠.”
글쓰기가 하나의 유행이 된 시대, 그는 오히려 글쓰기의 본질을 말했다.
“주변 사람들이 글을 쓰니 나도 써야 할 것 같고, 글을 조금 쓰기 시작하면 책 한 권을 내야 한다고 무슨 주어진 미션처럼 여기는데, 이게 그럴 일인가 싶은 거죠. 그렇다고 ‘쓰지 마라’ 이렇게 잘못 들릴 수도 있을까 봐 그런 부분은 세심하게 신경을 썼어요. 저는 ‘쓰지마라’가 아니라 쓰려면 제대로 써야 하고, 그 안에서 제대로 된 걸 얻어가야지 껍데기인 작가라는 호칭에 영향을 받는 것은 글쓰기 기본 정신에 안 맞다고 생각해요. 그건 모든 글을 하향 평준화시키는 지름길이기도 하고, 중요한 게 무엇이고 허울이 무엇인지에 대해 쓰고 싶었어요.”
까칠하지만 할 말은 한다는 그이지만, 글쓰기로 생계를 이어가는 작가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자칫 글쓰기의 문턱을 높이려는 말로 들릴 수 있다는 점도 그는 우려했다.
자신이 글을 쓰지 말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글을 쓰는 이유와 그 과정에서 얻으려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그가 생각하는 작가와 글을 쓰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지 물었다.
“굳이 구분하자면 프로와 아마추어가 있는 것처럼, 내 글을 사서 봐주는 사람이 있는 게 다른 거겠죠. 글만 쓰면 작가라는 게 듣기엔 좋을 수 있겠지만 냉정하게 따져봐야 돼요. 누구나 당연히 자기가 쓰고 싶은 걸 얼마든지 쓸 수 있죠. 그리고 그건 좋은 거예요. 왜냐하면 글을 쓰면서 사람이 나빠지진 않으니까. 하지만 글쓰기 자체가 주는 본질적인 기쁨 외의 것을 바라보면 의미가 없어지는 거죠.”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만, 작가라는 이름은 단순히 글을 쓴다는 사실 만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로 읽혔다.
그는 자신이 그림을 조금 그린다고 해서 화가라고 부르지 않는 것처럼, 글을 쓰는 일과 글로 독자에게 선택 받는 일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글을 대하는 태도에 대하여 말을 이었다.
“사실 작가라는 타이틀 자체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참 어려운 게 누군가한테는 제 글이 보잘것없는 것일 수도 있듯이 다 상대적인 거라고요. 그래서 너는 뭐 얼만큼 잘 쓰길래 그러면 저도 할 말 없어요. 근데 최소한 자기 자신은 염치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스스로의 글에 대해서 어디가 부족하고 혹은 어떤 점은 좋은 지는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 부분에 대한 약간의 겸허함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갈등이나 오해 같은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 진실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됐으면 해요. 한동안 글도 좋은 얘기를 하는 글들이 많았는데, 저는 좀 독하고 깊은 글들이 많이 나왔으면 하는 게 바램이에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적어도 자기 글을 돌아보는 겸허함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하는 그의 말에서 글을 대하는 진지함이 느껴졌다. 이번 책에서 “글쓰기에는 성공도 영광도 없다”고 단언한 작가에게 그 의미를 물었다.
“글을 쓸 때 성공이나 영광을 바라고 쓰면 진짜 안되죠. 사람들은 밖으로 드러난 빛나는 부분만 보는데, 그전에 다들 글 쓸면서 많이 고생했을 거라고요. 그리고 사실 그 빛남도 한순간에 없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빛나는 자리에 있어 보이는 작가도 늘 불안하고 책 낼 때마다 막막하고, 글쓰기는 숙달이 안 되는 업이잖아요. 글을 쓰면 쓸수록 잘 쓰는 게 아니니까요. 오히려 첫 책이 좋고 그 다음부터는 별로 안 좋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글 쓰는 일이 참 어려운 업이에요.”
그는 사람들이 작가를 바라볼 때는 대체로 눈에 보이는 성취에 주목하지만, 그 자리에 이르기까지 겪었을 고생과 불안,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인기와 성과는 잘 드러나지 않는 현실을 대변하고 있었다.
임경선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사랑은 꾸준히 등장하는 주제다. 오랜 시간 사랑을 써온 작가에게 사랑에 대해 질문했다.
“저는 사랑은 정의 못 내려요. 그냥 그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약간 제정신 잃을 정도로 누군가를 몰입해서 좋아하는, 저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살면서 유일하게 정신 놓고 평소 안 하던 일 미친 듯이 그때 하잖아요. 그럴 때 비로소 인간으로서 해방감을 느낀다고 저는 생각해요. 우리가 일상 사는 얘기를 굳이 소설을 읽고 봐야할까요?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고 그럴 때는 사랑에 빠졌을 때 밖에 없어요. 저는 사랑할 때 인간이 가장 인간다운 것 같아요. 보잘것없는 뻔한 속된 존재에서 감정을 뒤흔드는 그런 게 인생에서 몇 번 찾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그거를 소중히 하고 싶어요.”
사랑에 대한 그의 말에서 겉으로 보여지는 걸크러시와 다른 면모가 엿보였다. 또, 사랑을 쉽게 규정하지 않고, 인간의 복잡한 감정도 끝까지 들여다보려는 그의 태도가 삶을 대하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판매부수 25만부를 넘긴 <태도에 관하여>가 10년이 지났는데도 독자들이 찾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사실 그때는 아무 생각 없이 썼는데 나중에 느낀 건, 2030 세대들이 가장 고민하는 이야기를 조언이 아니라 내 생각을 부드럽게 얘기해서 그런 것 같아요. 아무래도 대놓고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에세이로 써서 읽기 편하고, 독자의 생각을 유발시키는 미묘한 선을 잘 지킨 것 같아요. 열심히 하는 스스로를 존중해 줄 수 있는 마음이 생기게 된 거죠. 거기다 모든 경험들은 헛된 게 없지만, 애 쓸 수 있는 시간도 때가 있으니까 헐렁한 어른이 되지 않게 나사를 좀 조여주는 역할을 했던 거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운동화 끈을 질끈 매도록 응원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인터뷰 말미에 차기작을 묻자 임경선 작가는 선뜻 답하지 않았다. 매번 이번 책이 마지막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앞으로는 지금보다 적게 쓰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번 책을 출간한 뒤 약 1년 동안 쉬는 시간을 가진다고 전했다.
그의 휴식 계획에는 출판계를 바라보는 복잡한 마음도 담겨 있다. 그는 AI의 등장으로 많은 것이 빠르게 바뀌고 있고, 출판계의 어려움 역시 가속도가 붙은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변화의 방향을 성급하게 단정하기보다 잠시 멈춰 상황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작가라는 이름을 얻는 것보다 글쓰기의 본질에 충실한 일, 세상의 속도를 따라가는 것보다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기다리는 일.
그가 말하는 글쓰기의 진지함은 어쩌면 그 멈춤에서 시작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