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편에서 이어집니다.
지난 2025년 김성신 평론가는 『서평가가 되는 법』을 출간했다. 책을 출간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얼마 전 한 업체에서 제 서평을 아카이빙하고 싶다고 해서 정리해 보니 약 2800편이더라고요. 최근 10년 치만 따져도 1000편 가까이 됩니다. 오래 서평을 쓰면서 깨달은 건, 서평이 진입 장벽이 거의 없는 글이라는 점이에요. 보통의 글은 독자를 설득해야 하니 글쓴이의 지명도나 매체의 권위, 시의성이 필요하죠. 하지만 서평은 본질적으로 독후감이에요. 책을 읽었다는 것 자체가 쓸 자격이 됩니다. 그게 서평의 가장 큰 매력이죠. 책을 읽었다면 쓸 자격이 있으니 용기를 내서 써 보시라, 그러면 자신의 전문성이나 무언가에 몰입한 경험을 세상과 나눌 접점이 생긴다, 그 이야기를 책에 담았습니다.”
하지만 AI가 책을 요약하고 자료를 찾아주고 글까지 써주는 시대가 됐다. 그렇다면 서평가의 역할은 무엇일지 질문했다.
“예전에는 한두 달씩 찾아야 했던 자료나 논문을 이제는 AI로 쉽게 찾을 수 있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메시지입니다. 내용을 기계적으로 전달하는 게 아니라, 서평을 통해 어떤 시의성과 어떤 생각의 중요성을 전할지에 집중해야 해요. AI가 만든 결과물을 그대로 쓰는 순간 개성은 사라지고 누구나 똑같은 수준이 됩니다. 그래서는 자기 이름을 브랜드로 만들 수 없어요. 브랜드가 되려면 나만의 냄새, 내 문체의 냄새가 필요합니다. AI는 개성의 냄새를 지우는 쪽으로 가지만, 인간은 오히려 자기 냄새를 계속 풍겨야 합니다.”
독자가 ‘김성신이 책을 소개하면 이런 느낌이 있다’고 기억하는 것. 그것이 AI 시대 인간 평론가가 가져야 할 경쟁력이라는 말로 이해되었다.
“책은 너무 많은데, 좋은 책을 제대로 알려 줄 권위 있는 매개자는 부족해요. 서평은 가치 있는 책을 세상에 알리는 일이니, 이제는 서평가들도 대중적 지명도를 넓히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제 전략은 젊고 매력적인 서평가들을 다양하게 길러내는 거예요. 제가 잘할 수 있는 일이고, 제 경험을 프로듀싱에 쓰면 최고의 자산이 되니까요. 서평가들의 프로듀서가 되는 것, 그게 지금 제 가장 큰 꿈이고 저를 가장 가치 있게 쓰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더 진화된 AI가 인간의 냄새마저 흉내 낸다면 인간이 쓴 글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요즘 이른바 ‘듀프(dupe) 향수’가 팔리잖아요. 유명 향수와 비슷한 향인데 값은 샤넬 No.5의 10분의 1 정도예요. 일반인은 사실 구분을 못 해요. 그래도 비싼 샤넬 No.5를 사는 사람은 분명히 있죠. AI가 일반화될수록 브랜드가 된 사람의 글은 오히려 더 높은 값을 받게 될 겁니다. AI가 그 계기가 될 거라고 봐요. 그리고 AI는 출판과 대립하는 별개의 존재가 아닙니다. 출판이 진화해서 AI가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김성신 출판평론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중요한 문제가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어요. 책과 출판이 다 사라지면 AI는 무엇으로 학습하느냐고 물으면, AI 업계는 AI가 만든 합성 데이터를 다시 학습시키면 된다고 답합니다. 그런데 영국 옥스퍼드대 등의 연구진이 AI가 스스로 만든 데이터만으로 계속 학습하도록 실험해 2024년 『네이처』에 발표했는데, 결과는 모델 붕괴였어요. 일종의 ‘지식의 근친교배’라고 보시면 됩니다.”
결국 인간이 생산하는 새로운 지식과 그것을 선별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면서 그는 AI 시대에 중요한 것은 정보의 양이 아니라 필터라고 강조했다. 그는 의학 분야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의료 현장에서 AI는 정확한 진단을 해 줘야 합니다. 잠재력은 커요. 예컨대 존스홉킨스 병원의 수술 성공 사례까지 참고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그걸 제대로 쓰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쓰레기 정보가 섞여 있어서예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학습하다 보니 그럴듯한 답은 나오지만 100% 믿을 수는 없어요. 그 위험을 알면서 사람 목숨에 적용할 수는 없잖아요.”
김성신 평론가는 여기서 필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니 AI 기업이 탐내는 게 뭐겠습니까? 바로 필터예요. 쓰레기 정보는 걸러내고, 제대로 된 의사들이 내놓는 최신 정보를 계속 넣어 줘야 그 정보가 필요한 쪽에서 가치를 인정하겠죠. 중요한 건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필터, 즉 권위를 인정할 수 있는 정보가 얼마나 있느냐입니다.”
그는 바로 여기에서 출판의 역할이 중요해진다고 강조했다.
“AI는 정보의 옥석을 스스로 가리지 못해요. 그런데 출판은 이미 엄청난 필터링을 해 왔습니다. 수십 년간 의학 전문서를 펴내 온 권위 있는 출판사, 대학과 의과대학 출판부의 책, 일정 수준 이상의 책을 꾸준히 써 온 저자들의 책이 바로 그 결과죠. 미국의 AI 기업 앤트로픽이 이른바 ‘프로젝트 파나마’를 통해 큰 비용을 들여 종이책을 대량으로 사들이고 스캔한 것도, 정보의 양이 아니라 이미 선별된 지식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전문 출판사와 대학 출판부, 전문 저자들이 오랫동안 책을 만들어온 과정 자체가 일종의 필터 역할을 해왔다는 것을 그는 정확하게 지적했다.
그렇다면 독자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그에게 좋은 책에 대해 물었다.
“2010년 무렵 효율을 앞세우는 분위기가 사회를 휩쓸자 사람들이 정의에 목말라했고,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죠. 『불편한 편의점』이 1위에 오른 것도 세상이 아름답고 따뜻해서가 아니라 비정하고 차갑기 때문이고요. 베스트셀러에는 시대의 욕망과 결핍이 반영돼요. 그런 의미는 있지만, 베스트셀러만 읽으면 편식이 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책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이 중요해요. 저는 나에게 계속 질문을 던지는 책, 내가 질문하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질문을 따라 다음 책을 찾아 들어가 보시길 권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생긴 질문을 따라가고, 그 질문이 또 다른 책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라는 그의 말이 참 좋았다. 또, 그것이 독서의 힘이라는 말로 받아들여졌다.
김성신 평론가가 바라보는 출판의 미래는 결국 ‘책의 미래’보다 훨씬 넓었다. 출판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화하고 있다는 그의 말에서 책을 통해 만들어지는 세상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기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