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정은 작가를 처음 만난 건 이태원의 한 강연장이었다. 작가는 아담한 체구에 눈이 빛나는 야무진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작가가 동서문학상 은상을 수상하고 10년이 지나 출간한 메리골드 시리즈는 현재 영미권을 포함해 전 세계 20여 개국에서 정식 출간과 판권 계약을 체결하는 성공을 이루었다.
해외 누적 판매량이 10만 부 이상을 기록하고 있는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는 마음의 상처와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따뜻하게 보듬어주는 대표적인 힐링 소설이다.
먼저 작가에게 소설 쓰기는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저한테 소설은 숨 쉬는 것이고 살아 있는 것이에요. 또 생존하는 것이기도 하고 현실적으론 생계를 잇는 것이기도 하죠.”
소설이 곧 삶이라는 뜻으로 읽혔다. 그런 작가에게도 글을 쓴다는 건 행복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글 쓰는 순간이 마냥 쉬운 것도 아닐 것이다. 다시 태어나도 소설가가 되겠냐는 질문에 글 쓰는 게 고통스럽지만 참 좋다는 대답을 준다. 그런 작가에게 글을 쓰는 시간이 행복한지 그리고 힘든 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글을 쓸 때가 가장 행복하면서도 가장 힘든 시간인 거 같아요. 양가적인데, 책이 출간되기 전에 원고가 제게만 있을 때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시간이 참 좋아요. 그리고 힘들기도 하고요. 내년이면 데뷔 20년 차 가 되는데, 얼마전에 이런 생각을 했어요. ‘아..20년 작가로 살아도 힘드네. 근데 다시 20년이 지나 40년 작가로 살아도 힘드네’ 라는 말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글을 쓰는 순간의 몰입의 기쁨은 그 어떤 유희로도 대체할 수 없는 거 같아요. 또 더 좋은 글을 쓰고 싶은데 내 능력의 한계치를 보았을 때 힘들기도 해요.”
작가의 메리골드 시리즈를 읽으면서 주인공 ‘지은’은 작가님의 페르소나이지 않을까 싶었다. 자연스레 메리골드 시리즈를 쓰게 된 시작이 무엇이었는지 질문을 건넸다.
“메리골드 시리즈는 아주 오랫동안 제 안에 있었어요. 심장이 찢어질 듯 아플 때 마음을 꺼내어 깨끗하게 빨아 햇빛에 바삭하게 말려 넣는다면 고통이 소멸되지 않을까..생각했어요. 어느 날, 이 고통과 슬픔도 얼룩처럼 내 인생의 한 무늬구나 하고 생각되는 순간 오래 그려온 소설이 쓰여지기 시작했어요. 음~저는 슬픔이라는 감정을 좋아해요. 해와 달이 한 하늘에 있는 것처럼, 밤이 가면 어둠이 오고, 어둠 안에 머물러도 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아침이 오고 해가 뜨듯이, 슬픔과 기쁨도 하나의 동그란 원처럼 같이 가야 하는, 동전의 양면 같은 감정이라고 생각했어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 보고, 우리네 삶의 슬픔도 아픔도 내가 안아줄 수 있다면 삶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 시리즈를 기획하게 되었어요.”
슬픔이나 고통도 인생의 한 무늬라는 작가의 말에서 삶의 성찰과 어려운 시간을 견뎌낸 강인함도 느껴졌다. 아마 작가에게도 한 인간으로 살아내면서 힘들었던 순간이 있었을 거다. 작가에게 어두운 시간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물었다.
“누구에게나 한 인간으로서 살며 가장 힘들었던 순간들이 오죠. 야속하게 한 번 오지 않는다는 게 인생에게 참 배신감이 들 때가 있지만요. 그럼에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건 참 다행이라 생각해요. 저는 삶의 고통을 글쓰기로 흘려보냈어요. 이겨낼 순 없는 거 같아요. 태산 같은 일들을 제가 오랫동안 에세이를 쓰면서 주제가 ‘위로,치유,힐링’이었는데 이제와 돌아보니 위로하고 싶었던 건 저 자신이었던 거 같아요. 글을 쓰며 최초 독자가 저이니, 글을 통해 감정을 흘려보내고 위로 받으며 시간을 넘어 왔죠. 메리골드 시리즈에서도 제 고통을 관통해 저를 위로한 문장들이 꽤 많이 있어요.”
글을 통해 위로 받는 최초의 독자가 작가 자신이라는 말이 인상에 남았다. 삶의 힘든 시간을 글쓰기로 건너왔다는 천생 작가에게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지 궁금했다.
“작가로 살아가며 이루고 싶은 꿈이 있어요. 늙어서 제 명에 죽을 때까지 글 쓰는 사람으로 살다가는 거요. 병에 걸리거나,사고사로 죽지 않고 제가 죽어가는 과정을 글로 남길 수 있다면 ‘이 생은 한 평생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이 감사했다.’ 하고 눈 감을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런 장면을 종종 상상해요.”
마지막으로 생성형 인공지능 이후에도 인간에게 글을 쓴다는 것이 중요한 의미로 남아있게 될지 질문했다.
“생성형 인공지능 이후 글쓰기는 평균율을 높였다고들 해요. 누구나 어느 정도 수준의 글을 쓸 수 있게 만들었다 하죠. 헌데 저는 생성형 인공지능을 사용해 계속 글을 쓴다면 우리는 실패할 자유와 서툴 자유 그리고 문장을 통해 세계가 깨지는 자유 등 많은 사유할 자유와 글을 쓸 자유를 잃는다고 생각해요. 매끄러운 글에만 우리가 마음이 울리는 건 아니잖아요. 솔직하고, 어설프지만 어떤 하나의 마음을 울리는 뜨거움이 있는 글에도 종종 끌리지요. 우리보다 더 나은 지능이란 어떤 기준으로 알 수 있을까요. 그리고 지능이 더 낫다고 해서 인간의 삶이 행복할 수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오히려 이 시대에 글쓰기야 말로 가장 필요한 소양이 아닐까요. 자신을 스스로 들여다 보고,성찰하고, 세계를 만들어가는 기쁨, 그리고 스스로 그 안에서 고통스럽게 허덕이다 발견하는 쾌감과 카타르시스는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다 생각해요.”
매끄러운 글만이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건 아니라는 작가의 말이 글쓰기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주는 듯 하다. 앞으로도 작가의 글이 많은 이들에게 닿아가 위로를 건네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