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가이자 변호사, 평론가인 정지우 작가는 SNS 문화와 현대인의 불안을 분석하여 청년층 사이에서 폭발적인 공감을 얻은 사회비평 에세이<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와 <분노사회>, <청춘 인문학>, <불행에 몰두하지 않는다>등으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으며, 지난달 환상으로 가득한 시대에 현실의 나를 지키는 방법을 제안하는 신간 <환상사회>를 출간하였다.
문래동 카페에서 만난 정지우 작가는 사단법인 ‘오늘은’ 이사장과 방송 출연까지 하는 활발하고 외향적인 사람일 거란 예상과 다르게 차분한 모범생 이미지에 스마트한 지성미가 자연스럽게 배어있었고, 사회 비평서를 주기적으로 내는 사회평론가답게 세상을 바라보는 날카로운 지성이 번득였다.
20여 년 동안 매일 글을 써온 작가의 관심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이어졌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청춘과 분노, SNS와 불안을 지나 이제 ‘환상사회’에 도착한 정지우 작가를 만나, 우리가 끊임없이 바라보고 비교하는 이미지의 정체와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지키는 방법,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를 물었다.
이하는 정지우 작가와 나눈 일문 일답.
20대에 <청춘인문학>을 처음 쓰셨고, 이번에 <환상사회>까지 약 15년의 시간이 흘렀는데요. 지금까지 작가님이 붙잡고 있는 질문이 있으신가요?
“어떤 하나의 질문보다는 저에게 제일 중요한 이야기들을 계속 자연스럽게 써왔던 것 같아요. 오늘 나의 문제를 내가 스스로 해명하고 답을 찾아가는 게 제일 중요했기 때문에 그런 글들을 썼던 거죠. 저는 15살 때부터 소설가가 꿈이어서 한 10년 소설을 쭉 썼어요. 근데 소설 공모전에 잘 안 되기도 했지만 대학교에서 철학 공부나 사회학 공부에 빠져들더라고요. 그래서 소설 당선에 집착하기보다 내가 쓰고 싶은 것들을 써보자는 마음으로 인문학 책도 쓰면서 집필 활동을 시작했어요. 제가 26살에 첫 책을 썼고 올해 40살이 되었는데, 책을 쓸 때 그 당시 저에게 중요한 화두에 항상 집중했던 것 같아요. 청춘 인문학을 썼을 때는 그 당시 청춘 담론이 굉장히 유행했어요. 근데 어떤 부분은 와 닿았지만, 청춘으로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들이 좀 남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청춘 이야기를 많이 했던 거고, 그렇게 제가 썼던 책들은 제가 어떤 것들에 관심이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어요. 고전에 대한 책을 썼을 때는 제 청춘이 제일 좋아했던 고전들을 정리하는 마음이 있었고,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는 사회 비평서인데 제가 수험생이었을 때였거든요. 뒤늦은 수험생이자 어린 아빠였고, 그래서 사회에 느낀 것이 아주 많았어요. 육아 할 때는 <그럼에도 육아> 같은 육아 책 쓰고, 변호사 되고 나서는 저작권 책 쓰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어졌던 거죠.”
이번에 출간하신 신간 <환상사회>는 어떤 책인가요?
“요즘 AI 시대가 되고, 우리 시대에 대한 진단들이 많은데요. 저는 이전부터 <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에서 우리가 SNS를 활용하면서 타인들의 이미지를 많이 접하고, 특히 AI 알고리즘으로 스마트폰을 많이 보는 시대라는 걸 말해왔어요. 이런 시대에 우리가 느끼는 어떤 초조함이나 불안이라는 게, 알고 보면 타인들의 이미지로부터 영향을 받고 있는 측면들이 굉장히 크다는 거죠. 그래서 스마트폰을 하루에 대여섯 시간 볼 정도로 남들의 이미지를 많이 보는 시대에, 그런 이상적 이미지들이 우리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고 있는지, 문제 의식을 갖고 분석해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 하는 이야기들을 펼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요즘 인터넷에서 조롱이나 혐오를 비롯해 타인들이 나락 가는 거 재미있어 하는 분위기도 많은데, 이번 <환상사회>는 그런 것들의 맥락적인 부분들을 분석해서 쓴 책이에요. 제가 쓴 책들이 흐름이 있는데, 이번 <환상사회>는 <분노 사회>와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로 이어지는 계보가 있죠.”
<분노사회>에서는 사회 전체의 감정을 이야기했고,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에서는 세대의 불안과 비교를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를 하나의 감정으로 표현한다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세요?
“저는 이런 감정을 이번 책 <환상 사회>에서 ‘항시적 초조함’으로 규정을 했는데요. 제가 <분노사회>를 썼던 게 한 10년 조금 더 됐거든요. 10년 전에 저는 분노가 우리 사회에 너무 많은 것 같다고 진단을 했었죠. 사실 지금도 분노가 많은 것 같긴 한데, 지금 분노는 조금 피상적인 느낌이 있어요. 지금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어떤 근원적인 감정은 불안으로, 많은 사람들이 AI의 발달로 미래에 대해서 불안해 하고 있다고 본 거죠. 또 10년 전과 다르게 기후 위기나 지난 몇 년 간 세계 금융시장을 비롯한 불확실성이 큰 사회가 되었다고 봐요. 그래서 우리가 이 ‘항시적인 초조함’을 매일 느끼면서 뒤처지지 않을까, 지금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이런 포모(FOMO)가 항상 깔려 있고, 그런 감정들의 근원에 관심을 가지고 이번 책을 썼어요.”
그럼 인간은 왜 항상 불안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세요?
“실존주의 철학자인 하이데거나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원래 불안한 존재라고 했어요. 왜냐하면 인간은 의식이라는 허깨비 같은 것에 의지해 살아가는 존재니까요.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동물과 인간을 많이 비교하는데 동물들은 인간처럼 불안해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자기의 본능과 대지에 밀착해 살아가기 때문이에요. 근데 인간은 거기에서 한 걸음 거리를 두고, 의식으로 자아 정체성을 규정하다 보니까 필연적으로 불안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죠.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부분도 있지만, 저는 시대적인 조건이 불안을 더 많이 자극하는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린 기후나 사회적, 경제적인 조건, 특히 온라인 클라우드 세계에서 자아를 형성하고, 물질적인 현실 세계보다 스마트폰 세계에 깊이 빠져 있잖아요. 10년 전만 해도 데이트를 하면 길 가다가 저 카페 예쁘다 하면 들어가서 커피 마시고, 식당 좋아 보이면 들어가서 밥 먹고 했다면, 지금은 미리 다 찾아보고 가죠. 그냥 우연히 골목에 가다가 어디 들어가는 일이 거의 없잖아요. 미리 별점을 다 찾아보는 것처럼 항상 머릿속에 의식이 앞서 있는 시대를 살고 있는 거죠. 그러니까 현실이 덜 중요해지고, 머릿속의 세계인 이미지의 세계에 깊이 빠져 있으니까 불안정할 수밖에 없어요. 사람을 대할 때도 온라인 관계에 익숙해지니까 물질적 대상으로서 사람이 아니라, 스마트폰 이미지로서의 타인이 익숙해지는, 존재의 조건 자체를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는 거죠.”
말씀하신 것처럼 SNS를 통해 사람과 연결이 많아졌는데 왜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는 걸까요? 또, 인간이 덜 외로워지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저는 일단 모든 온라인 속 관계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 자체를 가볍게 여길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관계를 맺는 것은 팔로우와 구독이고, 마음에 안 들면 그냥 팔로우 취소를 하니까요. 요즘 해외에서 이런 걸 ‘고스팅’이라고 하거든요. 이런 고스팅이 되게 흔해졌고, 어찌 보면 타인들이 약간 유령화된 거죠.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며 눈앞에서 보면서 관계를 맺으면, 내가 이 사람에게 시간을 쓰는 만큼 상대도 나에게 시간을 동등하게 쓰잖아요. 근데 온라인에서는 1 대 다수의 관계도 가능하니까 그렇지 않죠. 로빈 던바 교수의 <프렌즈>라는 과학 책에 인간의 관계가 깊어지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시간을 많이 쓰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과학적 연구 결과가 있어요. 내가 저 사람과 마주 앉아서 시간을 많이 써야만 관계가 깊어지고 우정이 생기는데, 온라인에서는 시간을 서로에게 투여하지 않고 스쳐 지나가는 클릭과 구경의 관계인 거죠. 그러니까 관계는 많지만, 실상은 유령들 같은 거죠. 그런 관계들도 깊어지려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넘어와 함께 만나든지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유령 대 유령의 관계가 될 수 있죠. 이제는 대지에 뿌리내리는 존재로 현현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해요. 인간이란 의식으로만 존재할 수 없고, 어린아이가 자기 안에서 복잡한 오감 체계를 통해 자아를 형성하듯 감각이 없으면 인간은 자기가 될 수 없잖아요. 근데 지금은 시각 위주 그러니까 의식 위주의 세상이 되어 버린 거죠. 우리가 자신의 존재를 느끼면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려면 현실적인 관계로의 변화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하면 손절사회처럼 쉽게 관계를 단절하는 경향도 많아졌는데 이런 현상에 대해선 어떻게 보시나요?
“<분노 사회>에서 했던 이야기인데 우리 사회의 특수한 맥락을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는 그전까지 동아시아적 집단주의의 시대를 살아왔죠. 가부장제에서 독재 정권도 지나온 집단주의 문화가 강해서 이웃집 숟가락 개수까지 알 정도였죠. 제가 어릴 때 만해도 동네 사람들이 다 아는 사람들이었고, 엘리베이터 타면 인사하는 소문도 많은 마을 공동체 문화가 익숙했단 말이죠. 근데 <분노사회>를 쓸 무렵에는 집단주의 문화에 대한 저항 의식이 크게 생길 때였어요. 명절 문화부터 시작해 집단주의가 불편하니 이제 개인주의 시대로 가자는 말이 각광 받던 때였거든요. 그 후로 10년이 흘렀는데 요즘은 약간 역전된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어요. 집단주의가 심했던 시절 개인주의는 어떤 대안이었는데, 요즘은 각자도생에 이미 서구의 개인주의를 넘어 찢어진 사회가 돼버린 거죠. 이제는 오히려 공동체의 가치를 그리워하게 될 때가 아닌가 싶어요. 예를 들어 최근 박해영 작가의 ‘모자무싸’ 드라마에서 친구들끼리 모이는 아지트 같은 걸 그리워한단 말이죠. 집에서 스마트폰만 보기보다 주체적인 관계를 회복하고 싶은데, 쉽지 않아서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싶어요. 온라인 세계의 관계 방식들이 오프라인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그 맥락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거죠. 한국적인 맥락에서 본다면 집단주의에서 개인주의가 심화됐고, 지금은 공동체의 회복을 이야기하고 있는 시점이라는 거죠. 물론 10년 뒤에는 또 달라질 수 있겠죠.”
<불행에 몰두하지 않는다>에서 굳이 ‘불행에 몰두하지 않는다’고 표현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우리가 사회에 대한 비판적인 관점을 유지해야겠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매몰돼서 내 삶까지 희생하는 건 좋은 삶의 태도 같지 않은 거죠. 사회 구조가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어떤 비판적인 점들로 인해 내가 불행하다고 내 아내와 아이까지 불행하게 만들 필요는 없잖아요. 그럼 같이 사는 사람들이 다 전염되니까요. 그러니까 냉철한 이성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은 유지하되, 매일매일 다가오는 불안이나 걱정에 몰두하여 잡아먹히는 삶이 아니라,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지금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들을 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근데 우리 시대는 불안이나 불행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을 다스릴 수 있는 기술이 많이 소실된 시대 같긴 해요. 그럼에도 지금 이 순간 가장 해야 될 것이 무엇인가 집중하면, 얼마 남지 않은 가을 저녁에 아이랑 배드민턴을 쳐줘야겠다, 나에게 주어진 2시간 동안 읽고 싶었던 좋은 책을 읽어야겠다 할 수 있죠. 그러면서 내 안에 있는 불안감을 잘 다뤄야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차원의 이야기를 이 책에 담았던 거죠. 저에게 일상, 오늘의 삶 자체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그런 과정에서 나온 표현이었어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누군가에게 불행에서 벗어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어려울 수 있습니다. ‘불행에 몰두하지 말자’는 메시지가 자칫 개인에게 마음가짐의 책임으로 돌리는 거로 받아 들여질 가능성은 없을까요?
“저는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모든 시대에 나름대로의 환경을 갖고 태어나잖아요. 이전에는 그런 환경을 개인들이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사회 운동이 활발했던 시대가 있었어요. 물론 사회를 더 낫게 만들기 위한 노력은 해야겠지만, 거기에 매몰되는 것보다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가면서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도 가지는 게 더 낫다는 거죠. 의미 있는 투표도 하고, 기부도 하고 그렇게 살아가면 되지, 세상이 좋아질 때까지는 행복해서는 안 된다, 이런 식의 관점은 받아들여지기 힘든 시대라고 생각해요. 저는 100년이 지나고 천 년이 지나도 세상에 지상 천국은 도래할 것 같지 않거든요. 한국만이 아니라 아프리카나 미국이나 남미 세계 어디나 인간이 만든 사회에는 항상 불합리한 면이 있고 부당한 면이 있는데, 그런 것에 눈을 감자는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몇 가지의 단절선들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거죠. 예를 들어 세계 거품 경제가 만들어지는 금융 자본주의 대한 비판 의식을 가진다고 해서 월가를 무너뜨릴 수는 없잖아요. 그럼 월가가 무너질 때까지 난 불행해야 되느냐 그건 아니라는 거죠. 기후 위기에 대한 문제 의식이 많지만 당장 중국과 인도와 미국의 모든 공장들을 문 닫게 할 순 없잖아요. 어떻게 보면 약간 불가항력적인 환경인 거죠. 그렇다고 오늘 내 옆에서 크고 있는 8살 짜리 아이와 불행한 시간을 보내야 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거죠. 그러니까 나에게 주어진 내 삶에 좋은 것들과 행복을 갖고자 노력하되 비판하는 의식은 그대로 가지면 된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내가 세상을 바꾸지 못해서 불행해야 되는 시대는 아니라는 거죠.”
②편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