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칠고 별 볼일 없는 한 남자의 생이 숭고하게 다가온다.
소설 <기차의 꿈(Train Dreams)>에서 데니스 존슨(Denis Johnson, 1949~2017)은 우리에게 한 남자의 인생을 그야말로 집어던진다.
책을 읽는 내내 속수무책으로 날아오는 생을 그대로 받아내야 하는 묘한 기분을 느낀다.

소설 속 주인공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미국 서부에서 철로를 놓는 나무를 베는 철도 노동자이자 벌목꾼이다.
그가 오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산불로 인해 어린 아이와 아내를 잃고 만다.
상실감에 괴로워하던 그는 불타 사라져버린 집터에 다시 오두막을 짓고, 흘러가는 세상에 맞춰 벌목꾼에서 짐꾼 일을 하며 그 자리에서 그냥 홀로 살아낸다.
그저 덤덤하게.
그러다 가끔 그레이니어는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몇 날 며칠 혼자 기차를 타고 고모네로 왔던 꿈을 꾸곤 한다.
그렇게 작은 오두막에서 늙어버린 그레이니어.
관절염과 류머티즘으로 고생하면서도 그 오두막에서 가을 겨울을 보내던 그레이니어는 봄에 등산객에게 시신으로 발견된다.
누구나 알고 있었지만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던 로버트 그레이니어는 그렇게 홀로 생을 마감한다.
<기차의 꿈>은 분량이 아주 길지 않은 중편소설이나 지루해서 읽기 어렵다는 평이 있을 정도로 흥미를 끄는 책이 아니다.
고독한 남자가 그저 그렇게 살다가, 그저 그렇게 생을 마감한 이야기가 건조한 문장으로 이어진 소설이다.
책을 읽으며 느껴지는 지루함은 사람의 일생을 대부분 흐르는 무료한 시간과 닮아있다.
하지만 건조한 문장 사이로 보이는 시적인 서사는 이 소설이 가진 묵직한 깊이를 보여준다.
<기차의 꿈>은 지난 2012년에는 퓰리처상 소설 부문 최종 후보에 오르고, 2019년 리터러리 허브(Literary Hub) 선정 ‘지난 10년간 최고의 소설 Top 20’에도 올랐다.
또한 2024년 뉴욕 타임스(NYT) 선정 ’21세기 최고의 책’에 선정되었고, 아가 칸 상 및 오헨리상을 수상했다.
은둔의 작가 데니스 존슨(Denis Johnson, 1949~2017)은 독특한 시적 문체와 환각적이고도 날카로운 서사로 거장 반열에 오른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작가는 젊은 시절 심각한 마약 및 알코올 중독에 시달리며 노숙과 빈곤 생활을 전전하다, 30대 초반 치료를 통해 중독을 극복했다.
이후, 자신의 가장 어두웠던 시절의 환각과 방황을 자전적으로 녹여낸 연작소설 <예수의 아들(Jesus’ Son)>을 써내며 문학적 대반전을 이뤄냈다.
‘작가들의 작가’라고 불리며 미국 현대문학 최고의 문장가로 추앙받았지만, 존슨은 인터뷰나 언론 노출을 극도로 싫어했다.
그는 대중 매체나 화려한 문학 행사 대신 미국 서부의 시골 마을인 아이다호나 텍사스 또는 오리건 등에 오두막을 짓고 고독하게 집필 활동에만 전념할 뿐이었다.
어쩐지 그에게서 그레이니어의 모습이 겹쳐진다.
작가는 그레이니어를 통해 말한다.
생은 어쩌면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저 살아가는 나날일 뿐이라고.., 그래서 숭고한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