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고전] 바틀비의 선택

모비딕의 저자 허먼 멜빌의 단편 소설에 나오는 바틀비는 이상한 사람이다.

잘 나가는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한 성실한 직원이 어느 날 이유 없이 사람이 아니라 사물이 되기를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미국 작가 허먼 멜빌의 단편 소설 <필경사 바틀비>는 성공을 추구하는 변호사 주인공 ‘나’가 일손이 부족해지자 ‘바틀비’라는 필경사를 고용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처음엔 빠른 속도로 엄청난 양의 문서를 기계처럼 필사하던 바틀비는 어느날 온화하고 침착하게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며 일을 거부한다.

그러더니 사람들과 소통도 거부하며 집에도 가지 않고 사무실에 거주하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주인공 나는 바틀비의 기이함에도 동정심을 느껴 그를 쫓아내지 못하고 사무실을 딴 곳으로 이전해버린다.

나중에 들어온 새 세입자의 신고로 바틀비는 교도소에 수감되고 식사마저 “안 하는 편을 택하겠다”며 거부한 채 벽을 바라보며 쓸쓸히 사망한다.

바틀비가 죽고 나서 그가 지상편지국에서 배달불능 편지를 소각하는 일을 했었다는 것이 알려지는 것으로 이야기는 끝이 난다.

<필경사 바틀비>의 작가 허먼 멜빌(Herman Melville, 1819~1891)은 미국 문학사에서 사후에 유명해진 비운의 천재 소설가이다.

하지만 그가 죽고 난 뒤 1920년대에 들어 작품성이 대대적으로 재조명 받으며 너대니얼 호손, 마크 트웨인 등과 함께 미국 문학의 거장으로 꼽히게 된다.

19세기 이전의 미국은 전통적인 청교도(Puritanism) 사상으로 어둡고 엄격한 사회였다.

그러다 19세기 이후 미국은 세계로의 영토 확장과 골드러시 그리고 철도망으로 이룩한 경제부흥과 근대적 금융 시스템으로 명실공히 서구 열강으로 자리를 잡아갔다.

이런 풍요로운 경제 상황으로 인해 미국 사회에는 우주는 도덕적으로 완전하게 설계되었으니 결국 선이 승리하고 전진한다는 ‘초월주의적 낙관주의’가 주류가 되었다.

하지만 이런 사회 분위기에 반기를 든 인물들이 있었다.

바로 허먼 멜빌(Herman Melville)과 너대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 같은 ‘어두운 낭만주의(Dark Romanticism)’ 작가들이다.

‘어두운 낭만주의’ 작가들은 급격한 산업화와 자본주의 가치관 속에서 인간이 부품화되는 현상을  포착하고 자본주의에서 소외되고 소통을 거부하는 현대인의 실존적 부조리를 작품 속에서 다루었다.

<필경사 바틀비>는 이유가 명확히 명시되지 않는 상황과 행동 때문에 훗날 프란츠 카프카 문학이나 부조리극의 선구적 형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바틀비의 수동적 거부는 단순한 거절이나 저항이 아닌 ‘선택을 포기하거나 유예하는’ 것으로 변호사를 포함한 권력 구조를 무력화 시켰다.

이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따르지 않지만 정면으로 저항하지도 않으면서 시스템 논리를 멈추게 한 바틀비의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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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경 에디터

ynk89@editorial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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